반대하는 한국 대학생의 얘기를 듣고 당혹했던 경험을 글로 썼다. 그

대학생 얘기가 "[죄송]이란 우리 말을 써도 되는데 왜 이해하기

어려운 [유감]이란 한자말을 써야 하느냐"라는 거였다. 그는

죄송이나 유감이나 모두 한자말이란 걸 모르면서 어떻게

한자교육을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회사원 O모씨는 요즘 학생들의 한자실력이 형편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날 대학에 다니는 딸에게 부모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고

했다. 아버지 이름은 제대로 썼지만 엄마 이름을 못쓰는 걸 보고

한숨만 나왔다.

부모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학생은 이제 놀랄만한 현상도

아니다. 국어학자 박광민씨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도권 모

고등학교 3학년 한 학급의 학생 50명중 부모 성명을 모두 한자로 쓸 수

있는 학생은 20명(40%)에 불과했다. 다른 15명은 부모중 한쪽의

이름만 한자로 쓸 줄 알았고 아예 부모 양쪽의 이름을 전혀 쓰지

못하는 학생도 15명이나 됐다. 기본적인 단어를 한자로 쓸 수 있는

학생의 비율도 애국가(애국가:42%), 예절(예절:18%),

학교교육(학교교육:14%) 등 매우 낮았다.

태어나서 대학까지 한글전용 교육을 받은 세대는 사회생활 초반부터

한자 때문에 어려움에 부딪힌다. 신입사원 교육에 한자능력

평가시험을 포함시키고 있는 한 국영기업체의 경우 신입사원들의

평균 점수는 40점 정도. 명문 사립 Y대를 졸업한 한 신입사원의

답안지를 보자.

이 사원은 염색을 [채색], 취소를 [패소], 박약을

[쇄약]이라고 독음을 달았다. 자기가 아는 글자를 바탕으로

모르는 한자를 넘겨짚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정도의 한자

실력으로는 [민족, 지구촌, 조상, 과거, 사용, 생활, 사회, 역사, 과업,

성공] 등의 단어를 한자로 쓰는 과제에서 단 한개만 적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신입사원은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변압운전, 공급예비율

중유전소발전소 등의 용어는 전혀 읽지 못했다.

한글 전용은 때로 언어의 기본 기능인 사회적 의사소통에도 큰 지장을

초래한다. 어려운 한자 단어를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보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는 지난 95년 큰 화제가 됐던 [국내 최대

수혈식 석실 발굴] [고속철도 경주 역사 예정지]

등에 대해 한글만으로 표기할 때 그 의미를 이해하는지를 물었다.

40명의 답변자 중 제대로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대답한 사람의 경우도 "수혈식 석실은 사람을 죽여서 그 피를 무덤

안에 넣은 것" "경주에 있는 역사 유물을 한데 모아 보관하는

예정지"라는 기상천외한 응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