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스타일(몸매)요…. 만족해요.”
아직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에는 너무 어린 탓일까. 소녀는 한참만에야 낮은 목소리로 수줍게 대답했다.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 한국에 혜성처럼 나타난 ‘빙상 요정’ 김연아(15·군포 도장중3).
말수가 적은 것은 1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지난해 9월 2004~2005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시리즈 2차대회에서 한국 피겨 사상 세계대회 첫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지난 4일 올시즌 1차대회에서 다시 우승.
이제 국제무대에도 완전히 적응이 끝난 듯했다. 표정에 여유가 생겼고, 눈빛에선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대회 두번째 금메달. 이번 대회에서는 뭐가 좋아졌을까. “글쎄요…. 생각 안해봤어요.” 역시 맥이 풀리는 대답이었다.
－한국 첫 국제대회 2회 우승－
대신 4년동안 그를 지도한 김세열 코치(33)가 제자 자랑을 늘어놓는다.
“올시즌 첫 대회인데 평가가 너무 좋았어요. 라이벌인 일본 심판들이 ‘몇달 사이에 표정과 동작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고 하면서 일본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리포트를 쓰겠다고 하더라고요. ISU 관계자들도 연기가 너무 좋아져 인상 깊게 봤다고 하고요. 지난 시즌에는 어린애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성숙한 느낌을 주는 것이 보기 좋다는 평입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보니 김연아가 더욱 성숙해 보였다. 실제로 지난 시즌 1ｍ56이던 키는 올 여름을 지나면서 1ｍ60으로 자랐고, 38㎏이던 몸무게도 40㎏을 넘었다고 한다.
여전히 가냘프고, 얼굴은 손바닥 크기 만큼 작지만 이런 몸매도 피겨 선수로서는 장점이다.
김코치는 “연아는 한국 사람 몸매가 아니에요. 다리가 길어서 실제보다 커보이고, 스타일이 좋아 같은 연기를 해도 점수를 더 잘 받아요”라고 말했다. 김연아 역시 “심판들이 스타일이 좋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직 한창 자라고 있는 유망주. 닮고 싶은 선수를 물어봤다. “연기력은 미셸 콴과 사샤 코언이 좋은 것 같고요, 수구리 후미에의 점프를 좋아해요.” 딱히 완벽하다고 여기는 선수가 없는 것 같다.
옆에서 어머니 박미희씨(46)가 거들었다. “전에는 코언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성적이 많이 떨어져서…. 사실 지금은 이런 선수들과 차이가 별로 없어요.” 이런 세계적인 선수들도 딸의 경쟁자일 뿐 우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스타일·연기력 등 두루 갖춰－
김연아는 특히 점프에 자신이 있다. ‘자신의 점프에 점수를 준다면’하고 묻자 “80점 정도”라고 답했다. 어머니 박씨는 이 점수도 모자란 듯했다. “나는 90점 이상 주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완벽한 점프라고 얘기해요. 올여름 미국 전지훈련 갔을 때 보니까 영광스럽게도 미국 심판세미나에서 연아의 점프 장면을 자료로 쓰더라고요.”
그러면 이렇게 되기까지 훈련량은. “지난 시즌에는 이틀 쉰 것 외에는 매일 연습한 것 같다”고 김연아는 말했다. 오전 9시에 일어나서 윗몸일으키기 등 복근훈련을 하고 태릉선수촌에 와 낮 12시부터 2시까지 스케이트를 탄 뒤 군포 집으로 돌아가 잠시 쉬고 밤 10시부터 2시간 정도 다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대략의 일과. 사이사이 다른 운동을 하고 학과 공부도 한다.
－29일 불가리아대회 金사냥－
하지만 김연아에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난 3월 열린 2005 세계주니어선수권 우승자인 일본의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미셸 콴도 실전에서 해보지 못한 트리플 악셀 점프를 구사하는 2010년 동계올림픽의 최고 라이벌이다.
김연아는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도 17일 하루만을 쉬었을 뿐 다른 날은 연습에 온 정열을 쏟았다. 아사다가 짓지 못하는 강렬한 표정, 아사다보다 높은 점프를 보여주기 위해.
김연아는 오는 29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개막하는 주니어 그랑프리시리즈 5차대회에 출전해 이런 노력의 결과를 보여줄 예정이다. 자신있는 표정에서 왠지 이번에도 좋은 소식을 전해줄 것 같다.
〈글 김석·사진 박민규기자 skim@kyunghyang.com〉- 내손안의 모바일 경향 “상상” 1223+NATE -